일본은 꽃꽂이, 일본 무용, 다도 등의 개인적인 취미 활동이 상당히 발달한 나라다.
그러나 한국처럼 사단법인으로 묶여 개인의 전수가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오랫동안 한 스승에게 사사 받는 무척 고달픈 코스를 거쳐야 하며 그 선생들 역시 제자를 선별하여 가르치므로 기회가 잘 오지 않는다는 점을 들고 싶다. 일본인의 꽃꽂이, 다도, 일본 무용 등은 지엽적이고 폐쇄적이다.
그럼에도 뉴욕이나 유럽에서 주목받는 일본 꽃꽂이에는 그 이유가 분명히 있다.
상당히 미학적이며 여백이 있으며 정갈하다. 일본의 꽃꽂이는 풍성한 많은 꽃이 필요하지 않지만, 표현의 기법은 수준급이다.
그냥 보기는 단순하고 쉬워 보여도 십 년 이상 다듬은 프로들의 실력이다.
메이지 진구에서 초대한 작가전이었는데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숙한 여인처럼 한눈에 보는 느낌이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저 오뉴월의 하루 빛이 아니다. 모든 것이 확연하게 잘 보이고 감각이나 느낌, 진실이란 단어들이 차고 쌓여 진가를 발휘하기도 한다. 꽃을 보면서 작가들의 생각을 유추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이유가 있다.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제대로 안다면 말이다.
사람도 그렇다.
아무리 입으로는 진실, 사랑을 운운하지만, 행동은 개망나니, 백정처럼 살고 있다면 그가 하는 진실이란 말은 악어의 눈물과 다름없다.
더욱이 연륜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저토록 꽃꽂이 하나에도 시간과 정성을 들인 작품에도 감동이 전이되듯이 사람의 진실, 본심에 거짓은 늘 드러나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사물에도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 그 메시지는 고귀하여야 하며 순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꽃꽂이,작가의 내공이 깊을수록 보는 이들은 잘 간파한다. 마치 그림 속의 숨은 뜻을 알려고 하듯이 침 봉에다 단순하게 꽂은 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선을 잘 활용하고 곡선을 완벽하게 표현하여 시각적 대비를 충족하게 하는 그야말로 건축 디자인과 같은 예술의 경지다.
그러므로 어떤 한 분야에 최고인 사람에게는 천재라는 칭호가 어울린다.
그들의 미다스 손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예술의 극치다.
그러한 천재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금광을 발견한 것처럼 간혹 대가를 만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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