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
理化学研究所の発生・再生科学総合研究センター笹井芳樹副センター長
8월 5일 오전 10시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사사이 요시키 부센터장이 자살했다.
일본은 노벨상이 이.화학 분야에서만 13개나 되는 과학의 세계 첨단을 걷는 나라다.
현재 이 화학 연구소 이사장인 野依 良治- 노요리 리요시도 2001년도 노벨상 수상자다.
일본 과학계의 우수한 인재는 전부 이.화학 연구소에 있다.
일본 노벨상을 대거 배출한 이화학 연구소는 대단한 곳이다.
특히 이번 STAP 세포는 일본에서 ES 세포를 발견하여 山中 伸弥- 야마나카 신야 교수팀이 노벨상을 받은 것처럼 세계의 주목을 끈 사건이었다.
그 경위는 小保方 晴子-오보카타 하루코가 세 번의 네이처에 투고하여 리젝트 당한 논문을 笹井芳樹-사사이요시키가 전면 수정하여 네이처에
투고. 실리면서 제 2의 세포가 탄생될 조짐이었다. 영국 네이처과학지에 실리면 거의 노벨상감이 된다.
여기에는 또 한 명의 교수가 동참했다.若山照彦- 와카야마 데루히코 교수다.
처음 오보카다하루코가 쥐의 세포에서 새롭게 발견한 스타프 세포가 이식했다고 하여 동참했다.
네이처 본문은 샤사이요시키 부센터장이 전부 교정했고 같이 실험 동참은 와카야마였으며 1월에 네이처에 실린다.
그러나 2월 이화학연구소 이사장을 비롯한 임원진은 이 세포 성공은 사실이 아님을 공식발표한다.
일파만파로 이후 6월 네이처에서 논문 철회가 되었으며 오보카다의 대학 학위 논문이 취소되었다.
그 중 가장 큰 고민을 한 사람이 바로 사사이요시키였다.
그는 인재로 36세에 교토 대학 정교수가 될 정도였으며 차기 노벨상 후보감이었다.
그런 그에게 오보카타의 논문은 획기적이었고 실험에 200번 성공했다는 그 결과가 매력이 있음은 충분했다.
샤샤이요시키는 자신의 출세와 노벨상에 대한 기대로 오보카타의 논문을 수정했다고 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험 결과가 ES 세포를 이식한 사진 조작이라는 의혹이 커지면서 엉터리 논문이 되었다.
쥐의 몸 안의 세포 중에 하나의 이름인 STAP를 이식하면 병이 든 세포가 새롭게 생성된다.
암이나. 불치의 병은 물론 생명 연장까지 가능한 과학계의 희망처럼 보였던 이 논문이 주목을 받았다.
네이처에 보내진 논문이 발표됨으로써 세계가 주목하지만, 이 보도가 나가자마자 사실이 아니라는 설이 불거졌다.
오보카타는 하버드대학에서 1년 연구하고 여러 유명교수 이름을 등에 업었지만 정작 결과치가 나오지 않는 논문이었다.
이 때문에 사사이를 비롯한 야마카다 교수 등이 단독으로 각각 기지회견을 통하여 발표하였다.
처음 세 명 발표와 달리 자신이 관련없음과 회피성이 강하게 보인다.
다른 연구소나 일본 이화확계는 STAP 세포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고 결국 오보카타는 해직을 당하였는데 그녀는 불복했다.
그녀는 세포가 있다고 맞주장을 하고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하여 계속 연구 중이다.
많은 일본인은 샤샤이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그런 엉터리 논문이 네이처에 실리겠는가에서 그의 책임 추궁론에 이른다.
자살하기 며칠 전 샤샤이는 부 센터장을 사직할 의사도 내비쳤고 이미 유서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의 개가인가? 몰락인가에서 샤샤이는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더는 자신의 명예가 더럽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더욱이 그는 많은 연구 결과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본의 재생 의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도 큰 공적이 있었으며 기대 되는 연구원 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을 하였다.
아베신조 총리,일본 관방성 장관까지 그를 추모하는 말을 남겼다.
사사이씨의 망막에 대한 줄기 세포 연구는 CDB 등에서 진행되는 세계 최초의 인공 다능성 줄기 세포 (iPS 세포)를
이용한 임상적 적용에 사용되는 기술의 기반이 되는 등 일본 재생 의학에 크게 기여 하여 온 일인이었다.
오보카타는 이제 STAP 세포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증명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곤란에 빠질 것이며 세계가 일본 과학계마저 불신하게 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실험 기간 중에 결과를 보이지 않으면, 연구비 유학비 반환, 연구소 해고 등 많은 문제가 도미노처럼 따라온다.
정작 태풍의 눈은 살아 있는데 책임론 때문에 목숨을 잃은 샤샤이 부 센터장은 심신이 피로해서 쉬고 싶다는 말만 남긴채 52세로 하직했다.